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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1차세계대전

전쟁 배상금과 하이퍼인플레이션

by stem44 2020. 5. 18.

A.전쟁 배상금.

 

 

독일은 1차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배르사유협정을 맺였다.

전쟁배상금을 승전국에게 보상해야하는 협정이였다. 해당 조약 독일 영토의 처분, 군사력 제한 등과 함께 독일이 승전국에 지불해야 하는 1320억마르크의 전쟁배상금이 포함되었다 -> 1마르크는 700원 정도였다고 92조4천억원

독일은 전쟁 배상금이외에 전쟁을 치르기 위해 진 빛이  1500억마르크 (100조원) 에 달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이미 국가 재정상태는 피폐해졌고, 세금을 징수한다고 해도 세금을 제대로 갚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B.돈찍어내기-양적완화

어마어마한 전쟁 배상금과 국가 부채를 갚기위해 위해 독일이 택한 방법은 화폐찍어내기 였습니다.  양적완화였습니다.

 

독일정부는 하루 종일 윤전기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돈을 인쇄소에서 찍어내기로 했습니다.

이미 모든 상품과 재화 식량은 전쟁에 투입되었고 시중에 물건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시중에 돈이 엄청나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재화의 가치는 상승하는 현상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물가상승)

 

1.빵을 사기위한 독일 아저씨
돈다발로 블록놀이 하는 아이들

 

돈의 가치가 터무니없을 만큼 떨어지니 1932년의 물가수준은 10년전에 비해 무려 10억배에 달했고, 마르크의 가치는 

1달러에 4조2000억마르크에 거래 되었습니다.  마르크화가 화폐의 기능을 상실한 종이 쪼가리 신세로 전략했습니다.

 

 

C.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남긴 상처 -평생 모은 돈이 종이 쪼가리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근로자는 월급이 물가만큼 오르지 않은 서민들의 삶은 궁핍해져갔습니다. 평생 모은 돈을 은행에 저축한 사람들은 전 재산이 하룻밤사이에 종이 쪼가리 변하는 것을 바라볼수 밖에 없었습니다.

 

 

 

D. 2차세계 대전의 발화점 -독일의 경제성장

 일단 독일이라는 국가 자체가 유럽에서 체급이 강한 편에 속합니다.
  1차 대전 이후로도 독일의 인구(6천 만 명)는 프랑스의 인구(4천 5백 만 명)보다도 많았는데, 사실상 인구 면에서 유럽 최대입니다.  더불어 기술과 산업도 매우 발달한 수준이었고 교육율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시기에 갑자기 달성된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통일국가로서의 독일이 형성된 이후로 계속된 상승세였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야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1차 대전 당시에 독일이 보였던 전쟁 수행 능력도 대단한 것이었죠.

 

  -독일 자동차 산업이 이끈 전쟁 극복
  그리고 인플레이션 위기가 지나간 이후로도 독일은 전반적으로 상승세였습니다. 국제시장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고 또한 미국 자본과 기술의 협조를 받아 산업적인 역량을 더욱 발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 시기에 크게 발전했습니다(독일이 정밀기술 면에서 기초가 탄탄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대중적인 자동차 산업의 원조는 미국입니다).

 

 

- 세계 대공황
  다만 이러한 상승세는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대공황에 부딪히면서 크게 꺾였고, 이 때 불경기와 사회 전반적인 불안정성, 특히 실업자의 증가로 인해 나치당과 공산당이 중앙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죠. 다만 대공황의 영향도 1932년부터 조금씩 사라지고 경제 활성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때에는 나치당도 다시 하락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에 여러 정치적 사건들이 터지고 나치당이 보수세력과 결합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죠.

 


- 나치당의 부상
  나치 독일의 경제 정책은 쉽게 정리하면, 군비 증강과 자력갱생입니다. 군비에는 거의 무제한적인 자원을 투입하면서 한편으로 국제시장에의 의존도를 낮추고 가급적 모든 경제적 수요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적극적인 재정확대와 더불어 일시적으로 경제활성화와 실업자 구제의 효과를 낳았죠. 하지만 그러한 정책은 한편으로 외화의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였고 심지어 심각한 물자 부족 사태마저 발생시켰습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은 군비증강에 집착하였고, 결국 이를 위해 사실상 국민동원체제가 되어갔습니다.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고 물자를 지급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원래 국제시장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하던 국가가 자력갱생을 하는 데는 많은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죠. 2차 대전 발발 원인에 대한 설명 중에는 나치 독일의 심각한 경제 문제가 지적되기도 합니다.

  나치가 집권하면서 전쟁배상금 지불은 완전히 거부되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전쟁배상금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독일은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지불 중지를 요청했고 연합국측은 그러한 요구에 대해 타협적이었습니다. 또한 전쟁배상금이 독일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거나 장애물로 작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업들의 경제 활동과 국민들의 생활 수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전쟁배상금이 아니라, 국제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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