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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유시민

사마천의 역사 서적 사기

by stem44 2020. 5. 15.

[세계 최초 역사가의 탄생]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열전의 마직막 권에 사기를 쓴 동기와 집안의 내력을 적어 놓았으나 정작 자신의 출생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집안은 먼 조상 때부터 사권으로 일해왔다. 그의 부친은 효무제 시대의 사관으로 태사령이란 직채에 있었다. 이러한 내력 때문에 사마천은 어린시절부터 역사에 대해 보고 듣고 생각할 기회를 많이 가졌고, 특히 스무살에는 여러해에 결쳐 중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역사적인 유적들을 답사하였다.

 

[역사가의 대물림]

사마천의 부친 사마담은 병으로 눈을 감기 직전 아들을 불러놓고 자기가 사관으로 있으면서도 중국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자기의 한을 풀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사마천은 부친의 뜻을 이루겠노라고 눈물로 서역하고 그로부터 3년 뒤 부친의 뒤를 이어 태사령에 임명되었다. 그때 사마천의 나이 36세 였다.

사마천은 역사서를 뒤지며 역사책을 기록하였다.

 

[역사가의 시련]-이릉사건

이릉은 한의 뛰어난 장군으로서 효무제의 명을 받아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고비사막을 넘어 몽고 지방으로 원정을 나섰다. 그런데 5천에 불과한 그의 군사가 흉노의 8만 대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이룽은 흉노 군사 1만을 배면서 분전하였으나 결국 사로잡히고 말았다. 흉노의 왕 선우는 열 배가 넘는 자기의 군대를 상대로 무려 열흘 동안이나 맞서 싸우며 엄청난 피해를 준 이 젊은 장군에게 크게 감동하여 정중히 대접했다.

이릉은 비록 흉노의 포로가 되었으나 자신을 신임한 한나라 조정을 위해 다시 싸우려고 흉노의 내부 사정을 살피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의 왕 효무제는 이릉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이릉의 죄를 묻는 어전회를 열었다.

 이자리에서 사마천은 이름을 비난하는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이릉이 충직한 사람이고 흉노의 대군에 맞서 한나라 군사의 용맹함을 과시 하였으며, 죽지 않고 항복한 것도 뒷날 나라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그를 옹호했다.

 사마천은 효우제의 미움을 받아 옥에 갇혔고 끝내는 궁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졌다. 궁형이란 남자의 상징을 자르는 형벌로서 어떤면에서는 사형보다도 더 가혹한 형벌이었다.

 

[사마천의 결심]

이릉을 변호하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절망에 빠져 " 아무 쓸모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가 자결하지 않고 그 치욕스러움 형벌을 감수한 것은 사마천의 열전에서 태도를 밝혔다.

 

"나의 조상은 기록이나 천문, 역사를 주관하는 하잘것없는 직업으로 점쟁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원래부터 폐하가 마음이 내키면 노리갯감으로나 상대하는 배우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말하자면 세상이 결멸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런 신분을 이어받은 내가 법의 제재를 받고 사형을 당하더라도 황소의 터럭하나가 없어지거나 벌레와 개미가 죽은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절개와 의리를 위해 죽은 사람들과 같아 보아줄 리 만무하고 그저 지혜까 모자라고 죄가 무거워 그랬다고 밖에는 생각 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인간이란 누구나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혀 있는데, 발산할 길이 없으며 과거의 일을 써서 미래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도 엉뚱한 생각인지 모르나 재주 없어 보잘것없는 문자이나마 천하에 흩어진 기록과 이야기를 망하고 역사상 활동했던 인간들의 행동을 깊이 관찰하고 그 진상을 추구하여 왕조의 흥망성쇠를 대국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성공과 실패의 이치를 밝혀 황제에게 지금까지의 130권의 저술을 완성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을 마치지못하고 죽는것이 아깝다는 마음 하나로 궁형이라는 극형을 감수했습니다.

내가 심혈을 기울인 이저술을 완성하여 한 벌은 명산에 감추어 영원히 전하고 다른 한벌은 수도에 사는 뜻있는 분들께 전할 수 있다면 나의 치욕은 씻겨질 것이며, 일만 번 사형을 받더라도 조금도 한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사마천은 황제의 명으로 역사서를 지필하지 않았으며, 사후에도 이것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기]라는 제목은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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